“이제부터가 진짜죠. 지금까지는 실패의 경험도 자산이 됐지만 이젠 아니에요. 안팎으로 짊어질 책임의 무게가 상당하거든요. 명실공히 스타트업에서 기업으로 거듭나야 하는 때가 됐습니다.”
강성근 차봇모빌리티 대표의 각오에는 회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지금까지 잘 해왔다는 자부심과 앞으로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어우러져 적당한 비장함마저 자아낸다. 지난 9월, 창립 7주년을 맞아 전사적인 조직개편을 감행하고, 기업의 새로운 이정표로 ‘차봇 2.0’을 전격 공표한 이유도 그래서다.
‘차봇모빌리티’는 자동차와 운전자에 ‘올인’한 스타트업이다. 자동차 딜러 전용 플랫폼으로 출발해 오토커머스의 토대를 하나하나 구축했고, 급기야 해외 자동차 브랜드의 공식수입사 자리까지 거머쥐었다. 지난해 론칭한 운전자 라이프스타일 앱 ‘차봇’은 이 회사가 만들어가는 유니버스의 정점이다. 비전을 실체화시키는 추진력은 이들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옥석가리기’가 유독 까다롭다는 모빌리티 분야에서 5년 만에 100억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던 힘도 그로부터 나왔다.
겉모습은 폭발적이지만 속으론 그저 자연스러운 이 회사의 행보는 수장인 강성근 대표를 꼭 닮았다. 불과 7년 새 자동차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비즈니스의 틀을 잡고, 이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킨 성과는 ‘사람에 대한 존중’을 추앙하는 강성근 대표의 리더십에 기인한다.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파악하고, 이를 이해와 협력의 시너지로 채워가는 그에겐 ‘창업자의 함정’같은 성장통도 비껴간다. 이 회사의 큰 그림을 더욱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 국‧영‧수 대신 ‘피터드러커’를 읽던 꼬마
‘사업가’. 강성근 대표가 초등학생 시절 적어 낸 장래희망이다. 당시엔 그저 막연한 바람 정도에 불과했다. 무슨 사업을 하고 싶은지도 몰랐고, 왜 하려는 지조차 똑 부러지게 설명할 수 없었다. 이유를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그냥 멋있어보여서”라고 뭉뚱그리는 게 고작이었다.
스스로 “그닥 특출날 것 없었던 아이”라고 평했지만, 꼬마 강성근이 누구보다 특별해지는 순간이 하나 있었다. 바로 ‘사람’이 모일 때다. 강 대표는 늘 기발하고 재미있는 ‘거리’로 친구들의 시간을 풍성하게 만들었고, 또래들은 자연스레 그런 강 대표 주위로 모여들었다.
“요즘 중고마켓이 ‘핫’하잖아요. 어쩌면 제가 시초일지도 몰라요.(웃음) 초등학생 시절부터 우리 학급만의 중고장터를 기획해서 친구들과 함께 했거든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직접 만들기도 하고, 만화를 그려서 돌려보기도 했죠. 친구들 반응이 너무 좋으니까 더 고무되어서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경영의 3요소 중 가장 핵심으로 꼽히는 ‘사람’을 아우르는 능력. 사업가로서는 될성부른 떡잎이었던 셈이다. 타고난 것에 더해 후천적인 노력도 이어졌다. 중‧고등학생 시절 그가 할 수 있었던 경영 수업은 단연 독서였다. 특히 ‘구루’들의 메시지에 심취했다. 이건희부터 피터드러커까지 전 세계의 위대한 경영자와 경영학자가 모두 그의 멘토였다.
“책을 보면서 경영에 대한 꿈을 시나브로 키워낼 수 있었어요. 방법론도 배웠고, 사업가의 자세나 마인드셋도 익혔죠. 자연스레 ‘내가 만드는 회사’에 대한 확신이 커지더라고요. ‘잘 될거야’라기 보다는 ‘무조건 할거야’라는 쪽으로요.”
앳된 꿈이 펼쳐지기 시작한 건 서른 살,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던 때였다. ‘더 늦으면 영영 못한다’는 조바심에 ‘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창업에 나섰다. 가지고 있는 돈과 지식을 총동원해 다양한 아이템을 고려했다. 한국에서 ‘컵밥’을 들여오는 것부터 자동차 부품을 유통하는 일까지 사업계획서가 켜켜이 쌓여갔다. 하지만 준비과정부터 턱턱 막혔다. 사업을 ‘책에서 배운’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돈 없는 것보다, 사회생활 경험이 전무했던 게 더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집안사정 탓에 너무 늦어졌다는 걸 의식했는지 의욕만 앞섰던 거예요. 오히려 늦었어도 차근차근 가야겠다 싶더라고요. 한국으로 돌아가 직장생활을 먼저 하자고 결심했던 이유죠.”
| 베스트 영업사원부터 전도유망한 기업가까지…답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강성근 대표가 선택한 직종은 ‘영업’이었다. 강 대표는 “가장 어렵고 힘들다고 소문난 분야에서 전투력을 키우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회상한다. 업의 자유도가 높고, 능력에 따라 수입이 열려있다는 점 역시 매력이었다. 그렇게 뛰어든 현장이 바로 자동차 세일즈, 회사는 ‘폭스바겐’이었다. 유년시절부터 발군이었던 소통능력에 진정성과 절박함이 더해지자 이내 두각을 드러냈다. 판매 왕에게만 주어지는 ‘대표와의 식사권’을 입사 두 달 만에 따냈을 정도다. 이후에도 승승장구. 최단 기간에 팀장자리까지 거머쥐었다.
“제가 설명하기 보단, 고객이 말하게 만들었어요. 이것저것 묻다 보면, 꽤 실한 대화로 이어지죠. 의외로 솔직하게 마음을 여시는 분이 많아요. 그 과정에서 소위 ‘라포’가 형성되면 성공입니다. 당장 차를 사지 않거나, 우리 회사의 차를 구매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언젠가 분명히 제 손을 거쳐 차를 구입하시니까요.(웃음)”
잘나가는 자동차 딜러로 3년, 뜻하지 않은 변곡점을 맞닥뜨렸다. 일명 ‘디젤 게이트 사건’이다. ‘폭스바겐’이 가장 깊게 관여된 스캔들로, 해당 브랜드 소속의 강 대표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이때 그의 직감이 번뜩였다. ‘바로 지금이다!’ 강 대표의 창업 트레이닝이 종료되는 시점이자, 차봇모빌리티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자동차로 하나 되는 세상’. 강성근 대표가 차봇모빌리티를 기획하면서 세웠던 슬로건이다. 강 대표는 “모빌리티 분야의 ‘배민’ 같은 플랫폼을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하나의 플랫폼에서 자동차를 사고 팔기도 하고, 금융‧보험을 연결하기도 하며, 부품이나 용품까지 구매할 수 있는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가 초기 구상이었다.
큰 그림을 구상한 만큼, 한 번의 붓 터치로 매조질 마음은 없었다. 캔버스의 모서리부터 한 땀 한 땀 진득하니 채워나가는 방식을 택했다. 확실한 수익원을 내는 비즈니스를 레버리지 삼아 새로운 사업에 재투자하는 식이다. 이런 선순환이 누적될수록, 회사는 강 대표가 맨 처음 그렸던 사업계획서와 점점 가까워진다.
일련의 과정을 가능케 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존중’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강 대표의 철학이다. 돌이켜보면, 창업 아이템을 확정한 이유 역시 자신에게 베스트 딜러의 왕관을 씌어준 고객들에 대한 존중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사람을 최우선으로 세우는 마음가짐은 위기 때 특히 빛이 난다. 설립 초기 자본잠식 위기에 빠졌을 때 회사를 지탱하고 기회를 열어준 딜러 전용 플랫폼은, 강 대표가 3년 간 동고동락했던 자동차 딜러들의 진솔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만든 서비스다. 동료들에 대한 존중을 담은 서비스가 사업의 기반을 마련해준 셈이다. 성장 페달을 꽉 밟아야 하는 시기에는 각 분야 스페셜리스트의 대한 존중과 신뢰로 사업의 확장을 꾀했다. 실제로 차봇모빌리티는 기업 내 주요 사업 분야에 각자 대표를 세워 그들이 경험과 전문성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독려한다.
“사업을 하면서 내 능력의 한계가 명확하다는 걸 절실히 깨달아요. 더 성장하기 위해선 보다 능력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고, 그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과 구조도 필요하죠. 결국 사람에 대한 이해와 수용이 관건인 것 같아요. 이해하고 수용하면 존중할 수 있게 되거든요. 누군가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다 보면, 함께 이뤄나갈 수 있는 것들도 점점 많아지게 될 겁니다.”
| “이제 소비자 곁으로”…강력한 연결고리는 ‘슈퍼앱’
존중의 힘은 고스란히 성과로 나타난다. 차봇모빌리티가 지난 7년 간 이뤄낸 결실은 ‘트리플(Triple) 100’이라는 용어로 갈음할 수 있다. 100억원의 매출, 100명의 임직원, 100만명의 사용자를 일컫는 말로, 강성근 대표가 1차 고지로 삼았던 목표다. 강 대표는 “얼마 전에 누적 서비스 이용자 100만명을 기록하면서 ‘트리플 100’을 완성했다”면서 “초기에 세운 청사진을 오롯이 지켜나가면서 이룬 결과라 그 의미가 더 크다”고 덧붙였다.
그 사이 회사의 체계도 더욱 견고해졌다. 자동차 판매와 정비 사업을 전개하는 ‘차봇모터스’와 금융‧보험 서비스를 제공하는 ‘차봇인슈어런스’를 양 날개로 두고 ‘차봇모빌리티’가 모회사로서 중심을 잡는 삼각편대가 완성됐다. 각 사업부는 각자 대표 체제로 전문성과 독립성을 가지고 움직이지만, 결국 하나의 방향으로 치달으며 시너지를 창출한다.
안에서 내실을 다지는 사이, 밖에서는 기대와 관심을 키운다. 중소벤처기업부벤처창업장관상(2020), 고용노동부일자리창출장관상(2020), 고용노동부강소기업선정(2020), 중소벤처기업부 ‘아기유니콘’ 선정(2022) 등의 수상경력은 그런 기대감에 대한 방증이다. 시리즈B 라운드 투자까지 성공적으로 유치하며 성장성에 대한 검증도 마쳤다.
하지만 강성근 대표는 이런 성과에 도취되지 않는다.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결국 차봇모빌리티가 이루려는 목표는 모빌리티 라이프의 혁신이다. 7년 전 사업계획서를 쓸 때부터 모빌리티 생태계의 주체인 운전자에게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하나로 연결하겠다는 포부를 담았고, 이는 여전히 그대로다.
“캐시카우 확보를 위해 딜러 전용 플랫폼을 만들고, 금융이나 보험사 문턱이 닳도록 찾아다니며 협업을 일구기도 했어요. 그때그때 필요했던 비즈니스 활동인 동시에, 하나하나가 의미 있는 퍼즐조각이죠. 지금부터는 그 퍼즐조각을 잘 끼워 맞추는데 집중할 겁니다. 그렇게 완성된 그림이 바로 저희가 그려놓은 청사진일거고요.”
지금까지의 성과를 퍼즐조각 확보에 비한다면, 지난해 9월 론칭한 ‘차봇’ 앱은 뒤늦게 마련한 퍼즐 판인 셈이다. 운전자 라이프 플랫폼을 표방하는 이 앱은 운전자가 자동차를 사고, 타고, 파는 과정에서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선보인다. 차봇모빌리티의 7년 결실이 고스란히 농축된 아카이브이자, 비로소 온라인에서 구현된 회사의 비전인 셈이다. 동시에 커다란 과제이기도 하다. 철저하게 ‘B2C’로 설계된 비즈니스인 만큼, 소비자들의 냉정한 판단에만 의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7년 전 차봇 창업의 직접적인 계기는 고객이었어요. 디젤 게이트가 터졌을 때 고객들의 실망과 불만을 온몸으로 느꼈거든요. 너무 부끄럽고 죄송스러웠어요. 그들을 진짜로 이롭게 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겠다고 다짐했죠. ‘차봇’ 앱이 그 다짐의 결과물이 될 수 있다면, 모빌리티 분야에서 또 하나의 슈퍼앱이 탄생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