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재벌이 만든 차 ‘그레나디어’
아시아 국가 중 한국서 첫 출시
“한국은 선진화되고, 훌륭한 자동차 시장이다. 탄생 목적이 뚜렷한 그레나디어의 성공을 확신한다.”
지난 22일 서울 성수동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전시장에서 만난 린 칼더 이네오스 오토모티브 최고경영자(CEO)는 오프로드(험로주행) 스포츠유틸리티차(SUV) 그레나디어를 아시아 국가 중에서 한국에 처음으로 출시한 배경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국 소비자는 흡수가 빠르고, 패션이나 유행에 민감하기 때문에 (그레나디어와 같은) 오프로더(험로주행용 차)에도 관심이 많을 것”이라며 “한국에서 자리 잡는다면 다른 시장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네오스 오토모티브는 영국 재벌이자 글로벌 화학기업 이네오스그룹을 창립한 짐 랫클리프 회장이 만들었다. 그는 본인이 좋아하는 랜드로버 디펜더(1세대)가 단종하자 디자인은 디펜더와 비슷하면서 오프로드 성능은 더 뛰어난 차를 직접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탄생한 차가 그레나디어다. 그레나디어는 영국 런던에 있는 랫클리프 회장의 단골 술집 이름으로, 척탄병(수류탄을 던지는 병사)을 의미한다.
그레나디어는 작년 4월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서울모빌리티쇼에서 실차가 공개됐고 안전 및 환경 인증을 마치고 5월에 국내 소비자에 인도가 시작된다. 국내 수입·판매는 차봇모빌리티 계열사 차봇모터스가 맡았다.
칼더 CEO는 “그레나디어 출시는 5년간 준비했다. 여러 가지에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는데, 실제로 나온 차에 대한 만족감이 높아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항공기와 같은 실내 컨트롤러 디자인, 탄탄하고 내구성 높은 차체 등이 좋은 반응을 끌어냈다. 소음이 크거나 차가 불편하지 않겠느냐는 의심이 있었지만, (실제로 타보면) 생각보다 부드럽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레나디어를 최초로 제안하고 자동차 회사까지 차린 랫클리프 회장 역시 결과물에 만족했다고 한다. 칼더 CEO는 “회장이 마치 개발 총괄처럼 디자인, 세부 요소, 엔지니어링 등을 꼼꼼하게 챙겼다. 충분히 만족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세계에서 안전·환경 인증이 까다로운 국가 중 하나다. 칼더 CEO는 “한국의 인증은 까다롭기로 유명한데, 이 때문에 본사가 많은 지원을 해왔다”며 “소비자 인도가 생각보다 늦어졌지만 출시와 판매에 문제없이 (인증이) 완료됐고, 세일즈 관련 계획에 대해서는 차봇과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그레나디어가 오프로드에 특화된 탓에 확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칼더 CEO는 “우리가 소수의 마니아에만 접근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일반 도로 위에서도 그레나디어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며 “미국의 경우 오프로더 애호가는 아니어도 스포츠 활동이나 레저를 즐기는 사람들이 우리 차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런던에서 첫선을 보인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퓨질리어는 이네오스 오토모티브의 소비자층을 확대할 모델로 꼽힌다. 그레나디어보다 작은 차로, 출시 시점은 2027년 상반기로 예상된다. 배터리는 삼성SDI(473,500원 ▼ 12,500 -2.57%)가 공급한다. 칼더 CEO는 “이번 방한의 목적 중 하나는 삼성SDI를 만나는 것이었다. 기흥 본사를 찾아 최윤호 사장 등 회사 경영진과 만났고, 시설 일부도 둘러봤다”고 말했다.
칼더 CEO는 과거 캐나다 원유·가스 업체 탈리스만 에너지에서 일했다. 또 에너지 분야 전문 사모펀드에서도 경력을 쌓았다. 이네오스그룹에는 2017년 합류했고 2022년 이네오스 오토모티브의 CEO가 됐다.
칼더 CEO는 “이네오스 오토모티브가 전동화(전기로 움직이는 것) 전환 시점에 자동차 업계에 진출한 건 흥미로운 대목이다. 백년 이상 내연기관차를 만들어 온 기존 자동차 회사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라고 혼란스러워할 때 우리는 (전기차에) 더 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 아직 인프라(기반시설)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내연기관이나 전기동력 등 다양한 옵션을 열어둘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네오스 오토모티브는 수소전기차 개발 계획도 갖고 있다. 그레나디어를 기반으로 한다. 이네오스는 2020년 현대차(241,000원 ▲ 1,500 0.63%)와 수소 생태계 확산에 협력한다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으나 도요타 기술에 기초한 BMW 수소전기차 기술을 쓰기로 했다. BMW는 그레나디어에 엔진도 공급한다.
칼더 CEO는 “내연기관에서 100% 전기동력으로 당장 바꾸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다양한 선택지를 준비하면서 내연기관도 어느 정도 유지할 예정이고, 퓨질리어는 배터리를 엔진의 힘으로 충전하는 레인지 익스텐더 버전도 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