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오픈 AI사가 개발한 챗GPT의 등장 이후 인공지능(AI)이 우리 일상에 스며들고 있습니다. AI 시장이 비로소 본격적인 개화기를 맞은 것입니다. 각 산업은 그간 쌓은 데이터에 챗GPT를 접목, 서비스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제조사 역시 올해 안에 각 차량에 챗GPT를 탑재해 운전자 편의 제고에 나설 계획을 밝혀 주목받고 있습니다. 자동차와 챗GPT의 만남이 그려낼 미래는 어떠할지, 생성 AI(Generative AI) 시장 전망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비로소 개화기를 맞은 AI 시장
생성 AI 등장 이전에도 AI라는 개념은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수준과는 거리가 멀었죠. 예컨대 은행사 홈페이지에 질의응답이 가능한 AI 챗봇이 있었지만, 정해진 질문에서 벗어나면 엉뚱한 답변을 하곤 했습니다.
8년 전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겼을 때만 해도 AI 시대는 우리 눈앞에 성큼 다가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우리 곁에 다가온 AI를 체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처럼 더딘 성장세를 보인 AI 시장의 판도를 바꾼 게임 체인저가 지난해 등장합니다. 미국 오픈 AI사가 개발한 챗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입니다.
거대언어모델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챗GPT는 우리가 이전에 알던 AI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챗GPT를 비롯한 생성 AI는 이미지와 영상을 제작할 뿐만 아니라 음악·미술 등을 창작하고,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코딩까지 돕고 있습니다. 사용자의 특정한 요구에 따라 결과를 생성하는 생성 AI 시대의 문이 열리자, 비로소 AI 시장이 본격적인 개화기를 맞이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인 폴라리스 마켓 리서치(Polaris Market Research)에 따르면, 2024년 191억 1,000만 달러(약 26조 원) 규모로 평가된 글로벌 생성 AI 시장 규모는 연평균 34.2%의 성장률을 기록, 2032년에는 2,000억 7,300만 달러(약 277조 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입니다.
빅데이터 보유 기업 챗GPT로 날개 달아
챗GPT는 각 산업군이 보유한 빅데이터와 만나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리걸테크(LegalTech) 기업의 경우, 그간 쌓아온 법령과 판례, 법률 논문, 사건 케이스 등의 빅데이터에 챗GPT를 접목, 법률 특화 챗봇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풍부한 데이터 덕분에 법률 특화 챗봇은 오픈 AI의 챗GPT보다 더욱 자세한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법률 상담이 가능한 특징을 보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 소상공인이 상가 임대차 계약 만료로 이사해야 하지만,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고민하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전문 법조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값비싼 법률 상담 비용으로 이 마저도 쉬운 선택은 아닙니다. 이때 법률 특화 챗봇은 관련 판례뿐만 아니라 어떤 법적 절차를 거쳐 구제가 가능한지 근거도 제시하기 때문에 소상공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법적 절차만을 안내하는 챗GPT와 디테일에서 차이가 납니다. 그간 리걸테크 기업이 쌓아온 법률 빅데이터와 챗GPT가 만나 날개를 단 셈이지요.
그 일환으로 리걸테크 기업 로앤컴퍼니는 자체 보유한 443만 건의 판례 데이터와 법령·결정례 등 총 16만 건의 법률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국어와 한국 법률에 특화한 거대언어모델을 개발하겠다고 밝혀, 서비스 고도화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했습니다.
사용자가 웹 서핑을 하다가 하이라이트한 정보를 모아 큐레이팅 서비스를 제공해 온 기업 라이너(Liner)는 자체 서비스에 챗GPT를 연동, 개인 맞춤형 AI 비서를 개발했습니다. 해당 AI 비서는 채팅을 통해 사용자의 질의응답에 답하는 것은 물론, 다음에 물어볼 만한 질문 몇 가지를 스스로 추천합니다. 출장을 준비할 때는 현지 예상 날씨와 그에 적합한 옷을 추천하기도 하며, 비즈니스 상대에게 보낼 미팅 제안 글도 대신 작성해 줍니다. 20분가량의 유튜브 영상 클립을 첨부하면, 빠르게 읽어 내용을 간추려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처럼 각 산업군은 챗GPT를 활용해 서비스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시도는 바로 ‘자동차와 챗GPT의 만남’입니다. 자동차 제조사는 그간 쌓아온 자사 차량과 유지 보수에 관한 정보, 고객 데이터, 방대한 포털 정보 등에 챗GPT를 접목, 운전자 편의를 높이기 위한 연구개발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챗GPT 탑재에 매진하는 자동차 제조사
자동차와 챗GPT의 만남으로 무엇이 가능할까요? 그 힌트는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제품 전시회, CES 2024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CES 2024에 참가한 폭스바겐그룹은 음성 인식 기술 파트너사인 세렌스와 협력해 자사 차량에 챗GPT를 음성 비서 형식으로 적용할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지능형 음성비서 ‘아이다 음성 어시스턴트’ 탑재 차량을 공개하기도 했는데요. 폭스바겐의 아이다 음성 어시스턴트는 운전자가 춥다고 말하면, 운전석 쪽 좌석 히터를 켜 주기도 하고, 약을 찾으면 가까운 약국을 검색해 경로를 안내하는 방식으로 작동했습니다.
차량 안에 챗GPT를 탑재하면, 단순히 차량의 기능을 켜고 끄는 데서 나아가 ‘왼쪽 뒷자리 창문을 반만 열어줘’와 같은 디테일한 요구도 가능합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예컨대 CES가 언제 처음 열렸는지, 얼마나 많은 방문객이 현장을 찾았는지 물어보면, 음성 비서는 이에 대한 답변도 능숙하게 해냅니다. 폭스바겐그룹은 자사 최신 전기차 ID 시리즈를 비롯해 올 뉴 티구안, 올 뉴 파사트와 같은 차량에 탑재할 최신 인포테인먼트에 챗GPT를 통합, 올해 안에 순차적으로 글로벌에 서비스할 예정입니다.
BMW 또한 CES 2024에 참가해 거대언어모델 기반의 생성 AI를 탑재한 ‘BMW 지능형 개인 비서’를 선보였습니다. 이 기업은 아마존의 음성인식 AI 비서인 알렉사를 기반으로 BMW 지능형 개인 비서를 개발했는데요. 음성만으로 차량의 다양한 기능을 제어하도록 꾸린 점이 특징입니다.
예컨대 BMW 운전자가 고속도로를 주행하다가 도로에 맞는 주행모드를 추천해 달라고 요구하면, BMW 지능형 개인 비서가 가속 모드를 추천합니다. 가속 모드로 전환한 뒤에는 지능형 개인 비서의 주행 모드 설명이 이어집니다. 가속 모드의 특징은 핸들이 부드럽고 가속 페달을 조금만 밟아도 차가 튀어 나가기 때문에 주의하라고 안내하는 방식입니다. BMW는 올해 안으로 ‘BMW 오퍼레이팅 시스템 9’이 탑재된 차량에 해당 기술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또 다른 예시를 들어볼까요. 챗GPT가 탑재된 차량 안에 운전자와 동승객이 미술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문득 네덜란드 출신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가 무엇인지 궁금해진 이들은 차량 안 챗GPT에 “빈센트 반 고흐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 무엇이냐”고 질문합니다. 그러자 챗GPT는 “별이 빛나는 밤에”라고 답합니다. 이어 “어디를 가야 그 그림을 볼 수 있냐”고 묻자, 챗GPT는 “뉴욕 현대 미술관”이라고 답합니다. 챗GPT는 반 고흐 작품뿐만 아니라 해당 미술관에 전시된 다른 작품들과 관련 작가들, 뉴욕 현대 미술관으로 가는 경로까지 나열할 수 있습니다.
챗GPT는 자동차의 고장 원인도 분석해 줄 전망입니다. 예컨대 자동차에서 냄새가 나는 이유를 챗GPT에 물으면, 차량 정보와 유지 보수 정보를 종합해 냄새의 원인을 찾아 점검 또는 교체 사항들을 나열하는 방식입니다.
전기차를 충전할 때는 챗GPT가 운전자의 무료함을 덜어줄 수도 있습니다. 최소 30분 가까이 충전 대기가 필요한 전기차 안에서 챗GPT와 함께 대화를 나누며 게임이나 퀴즈를 풀 수도 있고, 음악을 듣다가 가수에 관한 정보를 챗GPT에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긴 시간 충전해야 할 때 비까지 내려 밖에 나가기 어렵다면, 차 안이 하나의 놀이터가 되는 셈이죠.
자동차와 챗GPT 만남의 의미
자동차와 챗GPT의 만남으로 각종 즐길 거리와 운전자 편의 제고가 기대되지만, 무엇보다 안전 강화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빠른 속도로 도로를 달리는 차량 안에서 손을 뻗어 여러 기능을 조작하는 기존 방식은 운전자의 시선 분산이라는 위험을 가져오곤 했습니다. 챗GPT 적용 후 음성만으로 여러 기능을 세밀하게 조작하게 된다면, 이 같은 위험을 막을 수 있습니다.
물론 우려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음성 인식 오작동이나 차량 안에서 나눈 대화가 유출될 위험과 같은 부작용에 대한 우려입니다. 이에 대비해 챗GPT 탑재를 추진하는 제조사는 차량 내에서 이뤄지는 질문과 답변을 즉시 삭제하도록 프로그래밍하는 등 예방책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첨단 기술이 차량 안에 들어와 운전자와 탑승객에게 어떤 이점을 가져다 줄지, 부작용은 또 어떠할지, 직접 경험하게 될 자동차와 챗GPT의 만남이 가시권에 들어왔습니다.
칼럼니스트 소개
IT동아 김동진 기자
IT동아 편집부 소속 취재기자로, 모빌리티 취재를 담당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