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 시장은 현대차그룹의 안방인 만큼 현대와 기아가 압도적인 점유율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위상을 지닌 현대차그룹에게 지난 10년 간 가장 큰 위협은 “수입차”였습니다. 물론 쉐보레, 르노삼성(현 르노), 쌍용(현 KG모빌리티)의 3사도 있지만 이들과의 경쟁은 엄밀하게 말해 특정 세그먼트에서 경쟁 정도였으며 그 마저도 최근에는 3사가 상대적으로 부진하면서 경쟁의 강도는 예전 같지 않습니다. 반면 수입차는 독일 브랜드를 중심으로 빠르게 점유율이 늘어나며 현대차그룹에 위기감을 불어넣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수입차들 역시 이전처럼 지속적인 점유율 성장을 이어 나가지는 못하고 30만 대 이하에서 정체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원인으로는 크게 3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제네시스 라인업의 확대입니다. 수입차 시장은 벤츠, BMW, 아우디 등 프리미엄 브랜드 위주로 성장해왔습니다. 이들과 현대, 기아 브랜드로는 직접적인 경쟁이 어려웠을 수 있었으나 제네시스 브랜드가 성공적으로 자리잡으며 프리미엄 세그먼트에서 수입 브랜드 대비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두번째는 대중성 측면입니다. 수입차 중에 2천만 원대는 물론이고 3~4천만 원대에 국내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상품을 가진 브랜드는 많지 않습니다. 폭스바겐이 이 가격대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었으나 디젤 게이트로 인해 몇 년간 주춤했으며 일본 브랜드들은 일본 상품 불매운동 등으로 인해 한국에서 영향력이 제한적이었습니다. 또한 국내는 대형 SUV에 대한 선호가 강했는데 이 부분에서 현대차 그룹의 쏘렌토, 싼타페, 펠리세이드의 대안이 될만한 브랜드와 차량은 많지 않았습니다. 또한 전동화 측면에서도 테슬라 정도를 제외하면 전동화 시대를 리딩하는 느낌을 줄 정도로 적극적인 브랜드도 딱히 없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현대차 그룹은 아이오닉5, 기아 EV6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국내 자동차 시장의 전동화를 주도해왔습니다.
마지막은 관심도 측면입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수입차가 갖고 있는 아우라가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수입차가 흔해 지면서 이러한 아우라는 많이 사라졌습니다. 벤츠, BMW, 아우디는 분명 프리미엄 브랜드이지만 더이상 탄성을 자아내는 브랜드까지는 아닙니다. 포르쉐 정도라면 모를까요. 이러한 현상은 수입차의 대중화와 동시에 10년 사이에 우리나라의 위상이 많이 올라간 덕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문화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해외에 대한 경험도 폭 넓어지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 이상 해외에 막연한 동경이나 자국에 대한 삐 뚫어진 열등감을 가지지 않습니다. 막연한 환상이 없이 수입차를 봤을 때 대중적인 세그먼트에서 현대차 그룹과 가격/상품성 측면에서 경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떨까요? 국내 자동차 시장에 새로운 경쟁이 열린다면 그 시작은 중국차와의 경쟁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중국차는 여전히 우리에게 매우 안 좋은 이미지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 중국차는 굉장히 놀라운 발전을 거듭하고 있고 조금씩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미 중국에서 생산된 테슬라와 현대 쏘나타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있으며, 버스 등 상용 시장에서 중국차는 꽤나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과거 중국차들 일부가 한국 진출을 시도했던 것들은 모두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근거로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전의 중국차의 진출은 한국 내 딜러십을 통한 진출인데다가 라인업도 제한되어서 본격적인 진출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비록 최근에는 전동화의 진행 속도가 다소 주춤한 면이 있지만) 앞으로 다가올 전동화의 시대에는 다를 수 있습니다. 중국은 내연기관을 건너띄다시피하고 전동화에 진입한 덕분에 전동화 측면에서 상당히 앞서고 있으며 그 어느때보다 중국차들에게는 적극적으로 한국 시장을 공략할 유인이 가득합니다.
중국차는 내수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해외 진출에 대한 필요성이 강해졌으며, BYD, 니오 등 살아남은 업체들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며 해외 진출에 대한 여력도 충분한 상태입니다. 그동안 중국차는 인접 지역인 러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안정적인 수출을 이어 나가며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적극적으로 시장을 확대해왔습니다. 중국차는 이를 넘어 전통적으로 자동차 강국들인 선진국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습니다. 중국차가 그동안 공들여온 지역으로는 유럽 시장을 꼽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올해 중국차는 EU 전기차 시장의 1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럽 자동차 브랜드들이 상대적으로 전동화에 대해 대응이 느린 탓에 유럽의 정부들은 중국차를 포함한 수입 전기차에 대해 상당히 방어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차 입장에서 한국 시장은 전략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해야 하는 시장입니다.
한국 시장은 중국에 바로 인접해 상대적으로 물류비가 저렴한데다가 전기차 충전 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또한 전 세계 3위 브랜드인 현대차그룹의 안방이자 K팝 등으로 인해 주목도가 높으며 자동차 소비자들이 깐깐하기로 유명한 시장입니다. 이곳에서 안정적인 점유율을 확보한다면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가집니다. 더군다나 단순 수입 뿐만 아니라 한국 생산까지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생산된 차량은 관세로 인해 미국에 판매하기 어렵기 때문에 중국이 멕시코에 공장을 적극 추진하는 것과 유사하게 한국에서 생산까지 하며 한국 시장 공략과 선진국 판매를 동시에 노려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BYD와 베이징 자동차는 한국에 공장 설립을 검토 중입니다.
중국차가 상품성이 좋아졌다고 하더라도 판매/정비 네트워크, 브랜드 신뢰도를 극복하는데는 당연하게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파격적인 가격입니다. 현재 중국차의 해외 진출에 대한 유인을 고려하면 중국차 브랜드들은 국내 시장 침투를 위한 약탈적 가격까지 가능할 수 있습니다. 마치 알리가 국내 이커머스 시장 진출을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붙는 것처럼 말이죠. 아무리 우리나라가 중국차에 대해 거부감이 강한편이라고는 하지만 중국 내수와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 상품성을 쌓아온 중국차들이 거부할 수 없는 가격을 통해 시장을 침투한다면 결과는 어떨까요?
결과를 확언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중국차가 다가오는 것은 극단적인 국제 정세 변화가 있지 않는 한 분명히 다가올 현실입니다. 그리고 중국차가 본격적으로 한국에 진출하고자 한다면 현대자동차 그룹의 주요 전선은 지금까지의 6천만원~1억원 사이의 프리미엄 라인업 뿐만 아니라 그동안 상대적으로 잠잠하던 3~4천 만원 대에서도 새로운 전선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또다른 경쟁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칼럼니스트 소개
김진석: 자동차 회사의 마케터로서 일했으며, 현재 모빌리티 산업의 사업 기획자로서 일하고 있다. 네이버 포스트 카레시피의 콘텐츠를 담당했으며, 다음자동차 등에서 컬럼을 연재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