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 2016년 부산 모터쇼에 한 완성차 브랜드의 실무자로 참여했었습니다. 덕분에 2016년 부산 모터쇼에서는 전시 준비 기간부터 전시가 마무리될 때까지 내내 상주를 했었습니다. 그 이후로 어느새 8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코로나19와 같은 전 세계적인 큰 사건도 있었고, 딥마인드 알파고와 오픈ai의 챗GPT 사이의 간극만큼이나 세상이 변했습니다. 자동차 산업도 예외는 아니라 많은 변화가 있었고 모터쇼도 모빌리티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난 6월 28일에서 7월 7일까지 열린 2024 부산 모빌리티쇼에 방문했을 때는 새삼 많은 것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터쇼의 인기 하락

모터쇼는 자동차의 역사와 함께하는 유서 깊은 행사로 자동차의 역사에 언제나 중요한 이벤트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약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분명히 모터쇼는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오프라인 콘텐츠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모터쇼는 서울과 부산에서 번갈아 가면서 열렸기 때문에 완성차 회사 입장에서 모터쇼는 매년 정기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큰 행사였습니다. 또한 언론의 관심도 뜨거워서 매년 모터쇼에서는 어떤 브랜드가 새롭게 참여하는지 혹은 어떤 차종을 월드 프리미어 (혹은 한국 프리미어)로 공개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기대가 쏠렸었습니다. 그런 만큼 완성차 회사의 브랜드/마케팅 담당자들에게 모터쇼의 넓은 전시 공간을 어떤 주제로 어떤 콘텐츠로 채울 것인지는 매우 매우 중요한 주제였고 약 10일 정도의 전시에 엄청난 예산과 인력이 투입됐었습니다.

<2016년과 2024년 참여 브랜드수의 차이>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많은 것들이 바뀌었습니다. 이번에 부산 모빌리티쇼에서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참가 브랜드와 규모의 축소였습니다. 서울 모빌리티쇼도 1,2 전시장 모두를 쓰다가 1 전시장만을 쓰는 시대가 된만큼 어쩔 수 없겠지만 참여한 완성차 브랜드 중 수입차 브랜드는 BMW/미니가 유일했고, 국내에서 생산을 하는 GM과 KG모빌리티는 아예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국내에서 열리는 모빌리티쇼인만큼 국내 점유율 1,2위인 현대와 기아는 변함없이 가장 넓은 전시 공간을 꾸렸습니다. 하지만 이전처럼 대부분의 라인업을 전시하는 기조는 없었습니다. 현대의 캐스퍼 일렉트릭 체험존은 흥미로운 체험 공간이긴 했지만 부스 공간을 넓게 배정받을 수 밖에 없는 사정과 그 넓은 공간을 비교적 가성비 좋게 채워야 하는 고민에서 나온 결과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아도 마찬가지로 전 차량을 전시하기보다는 PBV와 전동화라는 주제에 맞춰 PV5와 EV3 위주로 구성했습니다. 반면 유일하게 참여한 수입차 브랜드인 BMW/미니가 가장 이전의 모터쇼의 문법에 충실한 전시를 보여줬습니다.

무엇이 변했을까?

지난 시간 동안 가장 크게 변한 것은 무엇일까요? 가장 큰 변화는 역시 코로나19로 인해 우리의 삶의 무게 중심이 급격하게 온라인으로 많이 옮겨간 것일 겁니다. 이제는 각 브랜드의 전시장을 돌아다니면서 가격표와 카탈로그를 수집하는 모습을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언제든, 얼마든 정보를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그 뿐만 아니라 다양한 유투버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리뷰 영상을 올립니다. 이들의 영상을 보면 마치 VIP 컨시어지 투어를 다니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전시 공간도 지난 세월동안 많이 변했습니다. 기존에는 모터쇼에 가야지만 볼 수 있었던 콘텐츠들을 언제든지 가서 볼 수 있는 현대 모터스튜디오, 기아 360 같은 브랜드 전시장이 곳곳에 생겨났습니다. 또한 수입차들 역시 전시장을 영업장의 개념을 벗어나 누구나 부담 없이 들어올 수 있으면서 깊이 있는 브랜드 체험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제 왠만한 콘텐츠로는 전시 공간을 찾는 사람들의 눈을 만족할 수 없습니다.

영상 참고 자료

<출처: mediaAUTO 미디어오토>

더 나아가 완성차 브랜드들은 전시를 넘어서 경험의 영역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BMW 드라이빙 센터,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같은 대규모의 드라이빙 체험 공간들이 생겨났을 뿐만 아니라 그레나디어가 인제 스피디움에서 차량의 매력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처럼 더 적극적인 체험을 제공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어쩌면 젊은 세대에게 자동차는 더 이상 그 자체로 핫한 콘텐츠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최근 몇 년 간 국내 시장에서의 경쟁의 강도가 약해지기도 했고, 자동차의 상품성은 상향 평준화되어 지난 몇 년간 상대적으로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의 자동차 상품성은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서 발달이 많았는데, 이에 대한 주요 발표들은 CES나 MWC 같은 IT 전시회에서 다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모빌리티 서비스의 발달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자동차의 필요성은 상대적으로 낮아졌습니다. 그러면서도 즐길 콘텐츠들이 다양하게 많아지면서 더 이상 자동차는 더이상 이전의 세대들에게 만큼 몰입도를 끌어내는 콘텐츠가 아니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부산 모빌리티쇼에서는 가족단위의 관람은 많았지만 젊은 커플들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아 보였습니다.

모빌리티쇼의 향방은?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의 모빌리티쇼는 어떻게 될까요? 모빌리티쇼라는 명칭이 단순히 모터쇼의 쇠락을 의미하는 단어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스마트폰의 시대를 지나 인공지능, 자율주행, UAM의 시대로 향해가고 있는 2020년대에 모빌리티쇼는 어떤 존재의 의의를 가질 수 있을까요?

우선은 누구를 위한 전시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전의 모터쇼는 모터라이제이션 시대의 산물로서 자동차 회사들을 위한 행사였습니다. 비록 행사 참여에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대중에게 본인들의 상품을 적극적으로 노출할 수 있고, 다양한 브랜드가 한 자리에 모이는 만큼 돋보였을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이득이 컸습니다. 다시 말해 자동차 회사들 입장에서 수지가 맞는 행사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모터쇼에 참가하지 않더라도 훨씬 더 저렴한 비용으로 대중에게 얼마든지 노출이 가능한 시대인만큼 고비용 저 효율인 모터쇼는 더 이상 완성차 회사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자동차 회사들을 위한 행사였던 모터쇼가 모빌리티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모빌리티 분야의 어떤 산업이 고객과의 오프라인 접점을 필요로 하는지가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콘텐츠 측면에서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기본적으로 모터쇼의 타겟은 광범위한 대중이었고 차량의 전시만으로도 대중의 관심을 끌어 모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시대의 콘텐츠는 넓고 얕은 콘텐츠보다는 좁고 깊은 콘텐츠가 살아남는 시대입니다. 모빌리티쇼도 마찬가지로 누구에게 어떤 깊은 욕구를 만족시킬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모두는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는 꼭 모빌리티쇼에 가야만 하는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모빌리티쇼라는 이름으로 변경한 만큼 자동차를 벗어나 콘텐츠의 확대가 필요해보입니다.

하지만 막상 자동차를 벗어나 모빌리티쇼를 가야만 하는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본질적으로 모빌리티는 공산품이라기보다는 “서비스”의 의미가 강합니다. 서비스는 실체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전시할 수 있는 콘텐츠가 딱히 없을 수 있습니다. UAM은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시하기도 어려우며, 전국의 지역별 자전거/킥보드 같은 마이크로 킥보드를 전시하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시보다 더 적극적인 경험이 더 중요한 시대라고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2024 부산 모빌리티쇼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콘텐츠는 한국도로공사의 안전벨트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콘텐츠였습니다. 자동차가 전복됐을 때 안전벨트의 역할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콘텐츠였는데 제가 아이와 왔다면 반드시 체험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압구정 서울쥐에서 준비한 부스에서는 클래식카에 직접 앉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오히려 최신의 차량보다 훨씬 더 기억에 남는 경험이었습니다. 모빌리티라는 영역 안에서 우리가 평소에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해볼 수 있도록 한다면 호응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런 콘텐츠를 가진 모빌리티 회사들이 전시에 참여할 유인을 제공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지만요.)

어쩌면 모터라이제이션의 시대의 끝이 다가오는 만큼 모터쇼의 시대적 소명이 다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항상 그렇듯 사라져가는 것들을 보면 왠지 모를 슬픔에 잠기게 됩니다. 모터쇼의 시대가 끝일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한 시대의 끝이 아닌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어 많은 사람들의 추억 속에 남을 콘텐츠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에게는 모터쇼가 그런 추억의 한 장면으로 남아 삶에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듯이 말이죠.

칼럼니스트 소개
김진석 작가: 자동차 회사의 마케터로서 일했으며, 현재 모빌리티 산업의 사업 기획자로서 일하고 있다. 네이버 포스트 카레시피의 콘텐츠를 담당했으며, 다음자동차 등에서 컬럼을 연재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