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 김진석 작가
전기차가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시점으로는 아마도 2014년 제주 국제 전기차 엑스포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레이 EV나 SM3 Z.E가 있었지만, BMW i3와 쏘울 EV가 출시되며 본격적인 시장이 형성된 건 2014년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급격히 늘었고, 2020년대 초반에는 테슬라 모델3의 인기와 현대차그룹의 아이오닉5, EV6가 출시되며 전기차의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현재 국내에 누적 보급된 전기차 수는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60만 대 이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기차의 충전에 대한 불편함과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으로 인해 국내의 전기차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둔화되면서 전기차 수요가 “캐즘”에 진입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거기다 지난 8월 발생한 대형 전기차 화재 사건으로 인해 전기차에 대한 공포심이 급격하게 커지면서 지하 주차장에 전기차 주차를 금지하거나, 충전량 제한을 권고하는 사례가 많아졌습니다.
그렇다면 전기차의 시대는 이렇게 멀어져버린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전기차는 지난 10년 동안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왔습니다. 초창기 전기차 보급의 가장 큰 장애물은 1회 충전 주행 가능 거리였습니다. 10년 전 쏘울 EV의 1회 충전 주행 가능 거리는 148km로 매우 제한적이어서 제주도 정도를 제외하고는 사용자들이 선뜻 구매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또한 아무래도 도입 초창기이다 보니 배터리 수명에 대한 우려도 많았습니다. 전기차 가격에서 배터리 가격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은 당시에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는데 과연 10년 넘게 차를 운행해도 배터리가 무사할 것인지 초기 구매자들 사이에서 우려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우려와 걸림돌들은 전기차의 상품성이 점차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해소되었습니다. 1회 충전 주행 가능거리가 400Km를 넘는 롱레인지 모델들이 많아지고, 배터리에 대한 우려도 누적 주행거리가 50만 Km를 넘어가도 별 문제없는 사례들이 나오면서 1회 충전 주행 가능거리와 배터리 수명은 더 이상 큰 고민거리가 아닙니다. 남은 것은 안전과 충전에 대한 불편함이 가장 큰 진입 장벽인데 충전의 경우 급속 충전의 발전, 충전 인프라의 확대에 따라 점차 극복되고 있기도 하며, 아직 글로벌한 방식은 아니지만 중국에서는 니오의 배터리 스왑 방식이 확대되고 있기도 합니다. 안전 역시도 현대차그룹의 배터리 안전성에 대한 적극적 홍보와 테슬라의 사용 매뉴얼 공개 등의 노력으로 인해 조금씩 신뢰도가 회복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전기차에 대한 대중의 불안감이 크더라도 한편으로는 그만큼 관련 논의가 활발해진 만큼 전기차에 대해 대중의 관심과 전반적인 지식이 증대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흐름들을 살펴봤을 때 지금 우려하는 부분들도 결국은 기술의 발전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극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다음의 이유들로 전기차의 시대는 결국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기차 시대가 올 수밖에 없는 이유
1) 본질적인 상품성의 우위
빠른 시간 내에 전기차의 상품성이 내연 기관을 압도하는 때가 올 수 있습니다. 전기차는 전기 모터의 특성으로 인해 처음부터 높은 토크에 도달할 수 있어 소위 말하는 “펀치력”이 좋고 그 외에도 내연기관 대비 조용한 주행감, V2L로 인한 전기 사용의 편의성 등 사용성에서 본질적으로 우월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또한 비교적 구조가 간단하고 부품의 개수가 적어 유지보수가 비교적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엔진오일을 갈아줄 필요도 없구요.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자동차의 경쟁에서 중요한 요소는 자율주행과 SDV입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대비 이 두 가지 핵심 경쟁 요소와 더 친화적입니다. 전기차는 전자 제어 시스템이 더 많이 사용되어 자율주행 시스템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전자적 기능과 통합이 용이하며, 구조적으로 간소해 자율주행 시스템을 위한 공간을 효율적으로 설계하고, 다양한 센서를 차량에 장착하는 데 용이합니다. SDV의 관점에서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전체적인 차량의 제어에 변화를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은 차량과 연계하여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내연기관 대비 유리한 요소입니다.
2) 기후 위기 대응
전기차는 환경을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입니다. 전기차의 내연 기관 대비 에너지 효율성이 더 높으며, 재생 가능한 친환경 에너지원을 통해 충전이 가능합니다. 전기차가 완전히 무결한 친환경은 아니더라도 내연기관 대비 더 친환경적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2024년 여름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여름 중 가장 덥지 않은 여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기후 위기는 이미 현실입니다. SF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처럼 외계 생명체가 태양의 밝기를 감소시키는 공상과학적인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지구는 점차 더워질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각국의 정부가 친환경적인 전기차 보급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3) 이미 투여된 자본의 크기
이미 전기차 산업에는 충전 인프라는 물론이고 다양한 분야의 연구 개발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본이 투여되었습니다. 특정 기술의 확대 방향은 자본이 움직이는 방향과 완전히 독립적일 수 없습니다.
당장은 기존의 내연 기관 위주 자동차 산업에 강점이 있는 유럽 국가들이 전기차 전환의 속도를 조절하고 있지만 자본과 기술 모든 측면에서 전기차 산업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은 전기차를 포기하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밀어붙일 것입니다. 특히나 미국, 중국은 자율주행과 SDV 관점에서도 가장 앞서있는 국가인만큼 전기차의 확대는 더욱 더 분명해 보입니다.
위의 3가지를 고려했을 때 전기차로의 전환의 큰 흐름은 바뀌지 않았다고 봅니다. 전기차가 100% 내연 기관을 대체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소요되겠지만 전기차가 주류로 올라서는 때는 분명 곧 올 것입니다.
최근 전기차 포비아, 캐즘 같은 말이 유행하는 상황에서도 기아에서 출시한 EV3가 판매 호조를 보이고 있는 것을 보면 더욱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기본적인 상품성이 탄탄할 뿐만 아니라 자율주행과 SDV로 무장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기차가 합리적인 가격으로 등장한다면 그 시기는 우리의 생각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칼럼니스트 소개
김진석 작가: 자동차 회사의 마케터로서 일했으며, 현재 모빌리티 산업의 사업 기획자로서 일하고 있다. 네이버 포스트 카레시피의 콘텐츠를 담당했으며, 다음자동차 등에서 컬럼을 연재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