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 탐구생활’은 차봇과 함께 ‘더 나은 모빌리티 라이프를 만들어 나가는 크루들의 일과 삶에 대한 도전과 성장 스토리를 담은 인터뷰입니다.
차봇이 사용자에게 더 편히 다가가고, 잘 구동되기 위해 매 순간 프로그램 언어와 씨름하고 있는 팀이 있습니다. 바로 테크부문인데요. 테크부문을 리드하고 계신 정문기 부문장님과 만나 17년간 개발자로서 밟아온 커리어 여정과 차봇과 어떠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지 인터뷰를 통해 세밀히 관찰해 봤습니다.
[Career Story]
‘일놀놀일을 즐기는 개발 덕후 정문기’
Q. 안녕하세요, 정문기 부문장님! 17여년간 개발자로서 어떠한 커리어 여정을 이어 오셨나요?
안녕하세요 차봇 테크 총괄 정문기 부문장입니다. 차봇에서 앱서비스를 개발하는 테크 부문의 총괄이다 보니, 내부적으로는 차봇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해요. (웃음).
저는 8살 때부터 8비트 컴퓨터를 다루며 컴퓨터와 친구로 지낸 컴퓨터 덕후인데요. 어렸을 적부터 무언가를 개발하는 것이 즐거워서 컴퓨터로 개발하는 거 또한 즐거웠어요. 그래서 컴퓨터 공학과에 진학해 다양한 공모전에 출전하며 아이디어 제안 및 서비스를 프로토타입 버전까지 개발하는 것을 즐겼었죠. 지금은 하나의 앱 서비스를 총괄해서 개발하고 있지만 더 좋은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졸업 이후에는 KT, 농심, CJ, 가온전선에서 IT 시스템/ 서비스 기획 및 개발 업무를 담당하며 앱/웹, 인프라, 보안 ERP 등 IT와 연관된 모든 부분들을 다뤘어요. 특히 2010년쯤 농심에서 최초로 안드로이드 앱기반 서비스 개발을 진행했던 기억이 가장 인상깊게 남습니다. 제조업이다 보니 6시그마를 중시하며 현장에서 나올 수 있는 개선 아이디어를 바로 제안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 톡톡’이라는 서비스를 개발했어요. 당시 안드로이드 기반의 서비스들이 조금씩 출시되고 있는 초창기였기에 신기술을 이용하여 개발부터 출시까지 했다는 것에 그 어느 프로젝트 보다 큰 성취감을 안겨줬었죠.
이렇게 여러 회사를 다니며 페이먼트 서비스, 3D 공유압 실습 시물레이터, 드론 방제 관리 시스템, S사의 공통 라이브러리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하며 개발자로서 새로운 분야를 창조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전의 경험을 토대로 정부로부터 창업 지원금을 지원받아 자체 서비스 및 SI 사업을 했어요. 그때 당시 뭐든 성공시켜 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었거든요. 5년여간의 사업을 마무리하고 현재는 다시 회사로 돌아와 성실히 차봇을 성공시킬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Q. 다양한 이력 중 사업을 하셨던 경험은 현재 차봇의 개발 부분을 통솔하는데 큰 도움이 되셨을 것 같은데요. 사업 스토리가 궁금해요.
5년 정도 운영을 했는데, 사실상 1인 기업이긴 했어요. 다양한 회사에서 일하면서 개발 뿐 아니라 기획까지 전반적인 업무를 모두 다뤘지만 특히, 전선회사에서 IT와 연관된 모든 부문을 더욱 심도있게 다룰 수 있었어요. 덕분에 다양한 지식을 쌓을 수 있어서 회사에 속해 있는 게 아쉽더라고요. 외부적인 요인으로는, 당시에 정부 지원 사업이 많았어요. 사업을 도전해 보기에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죠.
첫 사업 아이템은 3D기술을 활용한 공유압 실습 시물레이터 프로그램이었어요. 공유압 자격증을 따려면 오프라인에서 실습을 해야하죠. 그러나 공간과 실습장비가 비싸기에 모든 사람들이 실습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었어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3D기술을 활용하여 웹환경에서 실습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도록 서비스를 구현했었죠.
두 번째 사업 아이템은 페이먼트 서비스였어요. 지금은 네이버 페이나 카카오 페이가 활성화 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생소한 아이템이었어요. 여기에 현재의 T오더와 유사하게 테이블에서 QR 코드를 찍으면 주문과 동시에 1/N 결제까지 할 수 있게 했죠. 시제품까지는 런칭 했지만 생계를 이어가야 했기에 성공시키진 못했어요. 지금 페이먼트 시장이 활성화된 걸 보면 아쉬운 마음이 들긴 해요.
그 당시에는 영업과 투자 유치보다는 기술을 더 우선시했기에 기술이외의 다른 영역은 다른 사람에게 맡겼어요. 잘 못된 판단이었던 거죠. 주변에서 창업을 해서 성공한 선후배를 보면 대개 본인이 직접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외부활동에 적극 나서더라고요. 지금이라면 초기에는 개발에 집중하고 추후에는 개발자와 협업하며 외부로 투자 유치나 영업을 뛰었을 것 같아요.(웃음) 그래도 이런 경험 덕분에 조직이 커질수록 위임의 중요성도 체감하고, 우선 순위를 설정 하는 방법도 알 수 있었어요.
Q. 사업을 하시다 다시 직장인이 되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차봇에 합류하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으셨나요?
사실 처음엔 외주 인력으로 차봇 시스템 고도화만 도와주려 했어요. 당시 S사 프로젝트 합류 직전이었기 때문에, 차봇에서의 외주 일이 끝나면 그 프로젝트에 합류하려 했죠. 그런데 강병희 부대표님의 차봇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 저도 모르게 매료됐어요. ‘사고, 타고, 파는’ 차의 생태 주기를 모두 다룰 거라는 포부에도 빠졌고요. 무엇보다 새로운 시장이잖아요. 오프라인이 주가 되는 차량 구매 시스템을 온라인으로 전환하겠다는 게 함께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에 불을 지폈어요.
키 포인트는, 지금은 성공한 ‘아시아 최초 이네오스 그레나디어’ 임포터 사업에 대한 설명이었어요. 영국 차량을 임포터 하겠다며 눈을 빛내시는데 빠져들지 않을 수가 있나요. 차봇이 성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게다가 주변에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성공한 선후배들이 많아요. 덕분에 합류 결정을 했을 때도 두려움은 적고 도전심은 강했죠. 그래서 고심 끝에 22년도 5월 차봇에 합류하게 되었어요. 돌이켜보면 합류 이후 아이데이션부터 기획까지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었으니 개인적인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Q. 차봇은 기존에 일하셨던 분야와 다른 ‘모빌리티’라는 새로운 영역이었을 텐데요. 초반 적응에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모빌리티라는 용어가 ‘이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잖아요. 개인적으로 차봇이 속한 모빌리티 산업에 꼭 차만 해당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핸드폰이나 드론처럼 이동성이 강한 것들은 다 속하는 거죠. 이전에도 드론 관련 업무 경험이 있었고, 사용자 위치 추적 서비스를 구현해보는 등 연구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마냥 낯선 산업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알면 알수록 더 배우고 싶은 부분이 많았어요. 낯설진 않은데 흥미가 생기는 분야가 흔치 않잖아요. 그만큼 도전할 수 있는 영역도 넓고요. 도전을 즐기는 저에겐 더할 나위 없는 카테고리라 할 수 있죠.
Q. 입사 이후에 직접적으로 체감한 차봇의 매력과 성장 가치는 어떤 걸까요?
가장 크게 차봇의 매력을 느낀 건 올해 2월 영국 차량인 이네오스 그레나디어의 공식 계약을 시작했을 때였어요. 신사업 확장이라는 게 말은 쉽지만 그 과정 까지가 험난하고 엎어질 때도 많잖아요. 그런데 이전 강 부대표님이 반짝거리며 설명하던 일이 실체화됐을 때 성장 가치를 실감했죠.
또, 입사 이후 차봇에서는 개개인이 성장할 수 있는 조직임을 느끼고 있어요. 물론 개인의 학습능력과 업무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양한 업무에 대해 끊임없이 대화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것만큼 개발에 있어 매력적인 환경은 없다고 생각해요.
Q. 테크 부문 총괄자로서 현재 담당하고 계신 업무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알 수 있을까요?
초기에는 앱 및 API 개발을 시작으로 차봇 모빌리티의 전반적인 프로덕트 서비스 기획 및 개발을 총괄하는 업무를 맡아 진행했었어요. 서비스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테크 관련 개발 업무에 대한 비중이 커지게 되어 현재는 차봇 드라이버/ 차봇 프라임/ 차팀장 등 다양한 서비스를 직접 개발하며 테크 인력들의 업무를 조율하고 프로젝트별로 인력을 배치하고 있어요.
현재 테크 인력들은 맡은 바에 대한 책임감도 강하고, 업무를 지시하면 구축 방안을 스스로 많이 고민해요. 그런 인력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본인의 커리어 성장에 도움이 되도록 도와주는 부분도 주된 업무라고 생각해요.
차봇의 테크 인력은 지금이 베스트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이들이 ‘차봇의 성공’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잘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닦아주는 게 총괄의 몫이겠죠. (웃음)
[Work story]
“매일의 도전을 ‘재미’로 승화하다”
Q. 차봇에 합류 후 2년여간 어떠한 도전을 이어오고 계신가요?
처음 합류했던 22년도 5월로 거슬러가면, 당시엔 서비스가 많이 불안정했어요. 인력도 없는 상태였는데 앱 개선 작업이 필수였죠. ‘적은 인력으로 최대 효율을 내는 것’ 많은 기업들이 꿈꾸지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두 달 간은 회원가입 프로세스를 정비하고, 차량 관리 부분의 고도화 작업을 진행하느라 매일 열정 가득한 하루였어요. 오토리테일 서비스 플랫폼으로 도약하려면 누구나, 쉽게, 앱을 통해 자동차와 관련된 다양한 서비스를 체험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서비스들이 수시로 추가 되었다가 제거되기도 하면서 유저의 반응을 보고 찾는 서비스인지에 대한 정답을 찾아가야 해요.
그리고 이런 과정을 앱 스토어 배포 없이 빠르게 적용하기 위해 수시로 변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도전이었죠. 스타트업에서는 시간이 생명과도 같기에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고자 하면 이는 꼭 필요한 기능 중 하나였어요.
지금은 신규 서비스들을 개발하면서 레거시시스템을 신규시스템으로 전환하는데 애쓰고 있어요. 프라임의 경우 4개의 서버로 되어 있어 비용이나 성능면에서 너무 비효율적이기에 하나로 통폐합 중이고 신차 딜러들이 접하는 클라이언트도 다시 개편하고자 하고 있어요. 매일이 도전이고, 그 상황을 즐기고 있어요.(웃음)
Q. 매일이 도전이라는 말이 인상적인데요. 차봇과 함께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입사 직후 진행했던 앱 개편 작업이에요. 특히 신차 서비스 Phase 1 개발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이 프로젝트는 오토리테일 서비스 플랫폼으로 발판을 확장하고자 3개월간 프론트앤드부터 백앤드까지 풀스택으로 개발을 진행했어요. 쉽게 말하면 앱의 앞면부터 뒷면까지 모조리 새롭게 만든 거죠. 말 그대로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기획 난이도가 상당했어요. 건축에서 뼈대를 세우는 게 가장 기초가 되는 작업이듯, 차봇 어플의 뼈대를 세웠다고 할까요. (웃음).
당시 피드백 하나가 유독 기억에 남아요. “앱이 사용자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는 거였죠. 이 말이 어떤 뜻인지 밤낮 없이 잠도 못 자고 고민했어요. 아무래도 개발에 집중해야 되는 시기이다 보니, 기획 부분은 기획 인력에게 전적으로 맡겼거든요. 그럼에도 ‘차봇’이라는 하나의 제품을 다같이 포장하는 거니까 함께 고민해야 했죠. 고민 끝에 개선점을 찾고 적용해가는 과정이 재밌기도 했어요. 힘들었던 만큼 오래 기억에 남네요.
그래서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끝났다!’는 느낌보다는 ‘서비스가 사랑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프로젝트성 외주를 진행할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죠. 아이를 낳았을 때(물론 저는 남자라 출산은 하지 못하지만) 그 아이가 탈이 없는지 계속해 지켜보게 되는 그런 감정이었죠. 그만큼 차봇은 저에게 자식과도 같은 존재로 여겨지고 있는 것 같아요.
Q. ‘차봇이라는 하나의 제품을 다같이 포장한다’는 말이 인상깊어요. 목표 달성을 위해 함께 달려가다 보면, 소통이 중요할 것 같은데요. 어떤 방식으로 팀을 이끌고 계신가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본인 의견을 거리낌 없이 제시하고 팀원들도 함께 고민하는 프로세스를 만들고 있어요. 사실 제 좌우명이 “지금 실천하지 않으면 두번 다시 기회는 오지 않는다”거든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성공도 실패도 없잖아요? 도전심이 강하다 보니 가끔 두려울 때가 있는데 이 말을 되뇌며 중화해왔거든요. 그래서 팀원들도 후회 없이 일할 수 있도록 이끌고 싶어요. 저 역시 맡은 업무에 대해 뒷걸음질 없이 기간 내 프로페셔널하게 업무를 수행하는 리더이자 팀원이 되고 싶고요.
모두가 목소리를 잘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다 보니, 가끔은 의견 조율이 어려워질 때도 있어요. 그럴 때는 일종의 AB 테스트를 하곤 해요. 의견이 우세한 쪽이 A였다면 일단 A를 해보는 거죠, 그리고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곧바로 B도 테스트해봐요. 그렇게 직접 부딪히며 결론을 찾아갈 수 있게 돕고 있어요.
그리고, 이 업무에서 간과하기 쉽지만 기초가 되는 게 ‘소통’이거든요. 그래서 소통하는 리더십을 가지려 노력해요. 팀원들이 저를 친근한 형이나 동생처럼 느꼈으면 해요. 굳이 꼽자면 형쪽이 가깝겠네요. 왜, 드라마에서 보면 한없이 부드럽다가도 화가 나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형들 있잖아요. 그런 리더십을 추구하고 있어요.
Q. 여러 업무들을 맡고 계신 가운데, 업무를 하며 가장 우선순위로 두는 건 무엇인가요?
가장 우선순위로 꼽는 건 단연 ‘재미’입니다. 맡은 직무 또는 프로젝트에 재미가 없으면 금방 시들 것이고 그만큼 성과도 좋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시간만 때우고 퇴근하는 일상이 반복되겠죠.
이런 말을 하면 일부 직장인들은 코웃음을 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개발하는 게 재밌어요. 일이 재밌다는 건 감사한 일이죠. 물론 ‘이 업무는 하기 싫다’고 간혹 느끼기도 해요. 다만 일시적인 감정이기에 동료들과 대화도 하고 잠시 머리를 식히면 다시 평소의 정문기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팀원들도 일에 대한 재미를 붙일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어요. 업무 지시를 할 때 개발자 입장이 아니고 사용자나 기획자 입장으로 프로젝트 진행을 하자고 얘기하는 거죠. “이 부분을 이렇게 고쳐야 하지 않을까요?“와 같이 의문을 제시하는 거에요. 그럼 개발팀은 뭐가 문제이고 어떻게 고치면 될 지 고민에 빠져요. 그러면서 일에 대한 재미를 찾고 책임 의식을 가질 수 있겠죠. 반복하다 보면 차봇이 내 아이처럼 느껴져요. 다 함께 성장을 바라고, 키우는 재미를 느끼게 되는 거죠.
Q. 부문장님이 생각하시는 본인의 강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업무 시 마주하게 되는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강점이라면 ‘판을 잘 짜는 것’일 것 같아요. 다양한 업무를 하며 쌓은 경험 덕에 아이디어를 들으면 어떤 식으로 개발을 해야 될 지 머릿속에 구상이 되거든요. 수학 문제를 풀 때 답을 위한 수학 공식을 대입하듯 어떠한 부분에 무엇을 넣어야 답이 나오겠구나가 그려져요. 만약 그게 안 되면 수학 문제를 풀 듯 여러 방안의 공식을 대입해보며 종이에 끄적이곤 해요.
정말 해결이 안 되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잠시 머리를 식 혀요. 머리와 마음을 비우는 거죠. 산책도 하고, 주변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요.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상대를 통해 알게 되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도 하고요. 나이 직급 불문하고 같이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소통이 되는 동료가 있다는 것은 그 만큼 감사한 일이라고도 생각되고요.
Q.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나 업무가 있으신가요?
넓게는 고객들이 많이 찾는 서비스 또는 신기술이 적용된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고 싶어요. 요즘 화두가 되는 AI나 자율주행처럼 하드웨어와 엮을 수 있는 서비스 같이요. 지금까지 해왔던 업무도 프로그램 언어에 대한 장벽 없이 다양한 걸 개발하고 있어요. 특히, 신기술을 이용한 개발은 계속해서 도전할 거 같아요. “뭐 무리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하는 자신감은 항상 있어서요.(웃음)
좁게는 ‘내 차 구매’나 ‘차량 관리’처럼 이용자들이 많이 찾고,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차봇 내 서비스를 고도화시키고 싶어요. 그렇게 되면 ‘운전자에게 정말 쓸모 있는 앱은 차봇이다’라는 자연스러운 메시지가 남겨지겠죠.
[Life Story]
“일상 속 행복 개발자, 디지털 노마드족을 꿈꾸다”
Q. 이제는 ‘정문기’라는 사람에 집중해 보고자 하는데요, 지금까지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도전은 언제였나요?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도전이자 쓴 추억이라 하면 많이 거슬러 가는데요. 고등학교 시절 창의력 올림피아드 대회에 도전한 경험이 있어요. 당시에 무려 1000대1를 뚫고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거든요. 대단한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현장 과제에서 아쉽게 감점이 되어 수상을 하지 못했어요.
이후에 “감점된 부분을 이렇게 적용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자주 생각했어요. 그 실패를 양분 삼아서 대학 시절에는 MS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 도전해 교육부 장관상을 받았어요. 모든 실패는 새로운 경험을 안겨주는 것 같아요. 이 경험이 이어져 3~4학년 때 전액 장학금을 받았거든요.
인생이라는 게 아이러니하게도 실패를 했을 때 좌절하면 다음 기회가 오지 않더라고요. 아쉬움을 달래고 다음 기회를 위한 양분으로 삼는 법을 배웠어요. 차봇에서도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성공시키려 고군분투하며 업무에 임하고 있습니다.
Q. 업무에서 ‘재미’를 우선순위로 두시는 만큼, 일상 속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도 많으실 것 같은데요?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회사에서 가장 행복감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개발자와 디자이너, 기획자까지 모두가 한팀으로 하나의 프로젝트를 끝내면 참 행복해요. 이게 ‘팀워크 구나’ 라는 쾌감이 마약과도 같아요.
예로 작년 차봇 앱 리뉴얼 프로젝트처럼요. 각 팀별 10여명이 넘는 인원이 한 팀이 되어 프로젝트를 완성했는데 그 과정이 고단했지만 그만큼 성취감은 배로 느꼈던 것 같아요. 이자리를 빌어 함께 해준 팀원분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고요. 그리고, 런칭한 서비스가 사랑 받지 못하면 아쉬움이 남기도 하는데요. 그럴 때는 또 회식을 하면서 팀원들이 다시 행복할 수 있게 독려하고 있어요. 테크 부문이 회식이 잦은 이유죠. (웃음).
일 외의 시간에는 가정에서 가족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편히 쉴 때 행복을 느껴요. 거창한 게 필요한가 싶네요. 가족들과 따뜻한 밥을 모여 먹을 때 “이러려고 일하지”하는 생각이 들죠.
Q. 부문장님의 인생에 개발만큼이나 즐기시는 취미가 있으신가요?
요리하는 걸 즐겨요. 개발과 요리는 닮았다고 생각해요. 상상하며 기능을 만드는 거고, 요리도 상상을 통해 음식을 만드는 거잖아요? 그래서 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요. 자취 생활을 오래 하기도 했고, 부모님과 살 때는 부모님이 해주시는 음식이 입맛에 안 맞아서 생존 요리를 하게 됐거든요.(웃음) 그렇게 요리가 취미가 됐네요.
또 다른 취미는 여행이에요. 새로운 곳에 가서 풍경을 보며 걷는 게 좋더라고요. 특히 영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당시 동유럽을 돌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해요. 언젠가 미국에도 가보고 싶어요. 뉴욕의 번화가를 느껴보고 싶네요.
Q. 부문장님이 생각하는 10년 후의 스스로는 어떤 모습이신가요?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택하고 세계 일주를 하고 있지 않을까요? (웃음). 그쯤이면 차봇이 성공해서, 자식을 결혼 시키 듯 떠나 보냈을 것 같아요.
결혼하고 10년동안은 혼자 여행을 해본 경험이 없거든요.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하며 나 혼자 여행을 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성공하려면 차봇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수반되는 것 같아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에도 도전해 보고 싶고요.
Q. 차봇에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그 사람이 없었더라면…”.
앞으로의 행동에 따라 긍정의 의미일 수도 있고 부정의 의미일 수도 있겠네요. (웃음).
되도록이면 “그 사람이 없었더라면 (이런 성장은 힘들었을 거야)”처럼 긍정으로 남고 싶어요. “그 사람이 없었더라면 (이것보단 나았겠지)”은 너무 슬프잖아요. 이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이전 다른 회사에서 부정적 의미로 ‘그 사람이 없었더라면 더 그 회사에 오래 머물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고 오랫동안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이후 어느 조직에서든 함께 머물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정문기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차봇도 없었겠지’ 라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앞으로 더 많은 노력들을 이어나가야 겠죠. 그리고 이를 위해 차봇에서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IPO를 할 때까지 고객을 최대한 유치 시키고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고도화 시키는 것이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