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DV시대 성큼…‘제3사업자’를 주목하라
“플랫폼 입주 기업 중요성 커질 것”
[강병희 차봇모빌리티 부대표(COO)] 현대자동차그룹은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24를 통해 ‘소프트웨어로 통합되는 모든 것’(SDx)이라는 비전을 공유했다. 새로운 스마트 모빌리티 시대를 열겠다는 계획이다. 첫 단계로 오는 2025년까지 소프트웨어중심자동차(SDV)로의 전환을 추진한다. SDV사업은 이용자들이 소프트웨어로 연결된 안전하고 편안한 이동의 자유와 혁신적인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강한 의지 표명이다. 자동차를 ‘바퀴 달린 컴퓨터’로 만들어 줄 스마트카 시대의 필수 불가결한 미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가 스마트폰이 되는 시대
모빌리티 업계의 화두가 되고 있는 SDV는 언제부터 주목받았을까. 2008년 가트너가 발표한 ‘하이퍼 커넥티드’(Hyper Connected)는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키워드가 됐다. 이는 자동차 산업에도 적용돼 ‘하이퍼 커넥티드 모빌리티’라는 개념을 완성시켰다. 차량에 첨단 센서·통신 장비·데이터 처리 능력들이 탑재되고 스마트 시티와도 연계된다. 자동차 초연결의 핵심이자 향후 자동차 부가가치의 대부분을 창출할 ‘자율주행’에 대한 가속화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레벨 5로 칭하는 ‘완전 자율주행’ 시기에 대한 이견이 많지만 운전자의 개입이 최소화하는 레벨 3는 세계 최초 상용화에 성공했다. 서울시가 운영한 심야 자율주행 버스는 8000명 이상의 승객이 경험했다. 심야 자율주행 버스는 이제 유료화가 된다. 이제 차량을 제어하는 사람이 ‘운전자’일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현재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이 테슬라다. 기존 자동차 산업을 모빌리티 산업으로 혁신했다고 평가받는다. 단순히 전기차 또는 자율주행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 때문이 아니다. 자동차가 스마트폰처럼 소프트웨어 기반 위에서 작동할 수 있게 해서다. 더 이상 운전이 필요 없어진 탑승자가 SDV 기반으로 새로운 카 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패러다임 시프트를 일으킨 것이다. 테슬라는 중앙 집중화 전기/전자(E/E) 아키텍처를 구현했다. 자체 운영체제 개발·무선업데이트(OTA) 보편화·반도체·소프트웨어·클라우드까지 모두 개발한 상태다. 완성차 업계는 테슬라가 경쟁사 대비 최소 10년을 앞섰다고 평가한다. 말 그대로 SDV의 표본이다.
신도시 개발 수준의 비용·시간 필요
SDV는 하루아침에 뚝딱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마치 신도시를 개발하는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2022년 신드롬을 일으켰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을 예로 들어보자. 이 드라마 6회차 반영 분에는 디지털 미디어 시티(DMC)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새천년 신도시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DMC 개발은 1990년대 ‘난지도’라 불리던 상암동 일대를 최첨단 종합 미디어 산업 도시로 탈바꿈하겠다며 추진된 거대 프로젝트였다. 현재 상암동은 드라마에서처럼 첨단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메카가 됐다.
완성차 제조사들은 하드웨어 기술의 발달 속도가 저하되고 업체 간 상품성 격차가 축소함에 따라 마치 ‘DMC’ 개발 사례처럼 SDV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차량 내 결제·인테리어 개인화·자율주행·차량 공유·대단위 차량 관제 시스템(FMS) 등 다양한 모빌리티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의 성능이 뒷받침돼야 한다.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들은 거대한 신도시 개발 사업처럼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퍼스트 무버’가 되기 위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우선 중구난방인 하드웨어부터 재정립하며 전자제어장치(ECU)를 구조화하고 도메인 컨트롤 유닛(DCU) 중심으로 개편하고 있다. 네트워크 컨트롤을 변화시켜 차량 무게에 대한 변화도 꾀한다. SDV를 위한 핵심 기술인 소프트웨어에서는 다양하고 복잡한 고려 요인이 존재한다. 차량 소프트웨어는 여러 레이어가 결합된 스택 구조다. 운영체제(OS)·애플리케이션·미들웨어(Middleware)가 필요하다. 여기서 또 범용 OS인지 임베디드(Embeded) OS인지를 따진다. 차량 내 데이터·통신·보안·OTA·서비스 지향 아키텍처(SOA) 등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인들은 차고 넘친다.
SDV, 제조사가 주목하는 이유
SDV는 크게 ▲OTA 업데이트와 통합 ECU·차량용 소프트웨어 및 클라우드 등으로 구성된 E/E 아키텍처 ▲모빌리티 및 커넥티비티 서비스를 통합하고 제 3의 사업자까지 고려한 서비스 플랫폼 등으로 나뉜다. 산업 자체를 놓고 보면 SDV의 뼈대라 할 수 있는 백엔드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풀어내면 우리는 SDV에 대한 체감이 쉽지 않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즉각 체감하고 효용 가치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차량용 인포테인먼트(IVI)다. IVI는 차량 주행과 관련된 정보를 표시하는 계기판·인포메이션·미디어 콘텐츠 등을 통틀어 표현하는 말이다.
IVI의 개념은 최소 90년 전에 나왔다. 1930년도에 AM 라디오 탑재가 시작됐다. 1950년대 크라이슬러는 FM 라디오와 레코드 플레이어를 도입했다. 1980년 후반에는 최초의 차량용 CD 플레이어가 탑재되기도 했다. 1990년부터는 GPS를 탑재해 내비게이션이 제공됐다. 2000년부터는 LCD 패널의 보급화로 물리적 버튼이 디스플레이에 통합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모바일에서 경험한 직관적 유저 인터페이스(UI)와 애플리케이션 등이 차량에 탑재됐다. 차 안에서 결제를 하고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보거나 웹서핑을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SDV로 시선을 돌리면서 IVI를 구성하는 하드웨어 요소가 디지털 콕픽으로 진화했다. 이를 기점으로 집에서 TV나 스마트폰을 즐기듯 차 안에서 할 수 있는 행위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운전자 주행 습관 기반 서비스·운전자 헬스케어·증강현실(AR) 내비게이션·얼굴인식 교감형 기술인 ‘페이스 커넥트’·카페이 서비스 등 풍부한 서비스들의 제공이 가능해진 요즘이다. 앞으로도 관련 시장은 커질 것이다. 시장조사기관 마켓스앤마켓스 리포트에 따르면 IVI 시장 가치는 2028년까지 약 40조원 규모로 성장이 예상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태계 형성
SDV는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위한 핵심 요소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앞다퉈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기업이 만든 플랫폼이 얼마나 잘 활성화될 수 있느냐다. 앞서 언급했던 <재벌집 막내아들>을 다시 한 번 예시로 들어본다. 드라마 속 주인공 진도준은 DMC 성장의 핵심 원동력으로 E-스포츠와 애니메이션 방송국을 꼽았다. 이런 초기 입주 기업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DMC는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세계 최초의 스마트폰으로 여겨지는 아이폰 사례를 봐도 알 수 있다. 사실 아이폰은 스마트폰의 시초가 아니다. 그럼에도 아이폰이 스마트폰의 시작으로 불리는 이유는 뭘까. 아이폰이 피처폰 시대의 막을 내리고 스마트폰의 왕좌를 차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남들이 하지 않은 앱 생태계 구축과 앱마켓 활성화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아이폰이 실현한 새로운 앱 생태계는 개발자가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했다. 소비자는 생활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수많은 앱들을 본인의 취향에 따라 다운받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선례 때문에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도 다양한 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를 통해 생태계 구축을 강화하고 있다. 일례로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인 스텔란티스는 데이터 API를 총 152개 오픈하며 확장성을 넓히고 있다. 현재 차량용 앱스토어를 자체적으로 구축할 것인지, 외주로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타당성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 하나의 브랜드에 종속된 앱은 시장 규모도 작고 자동차 회사에 종속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안드로이드 오토는 260개 이상의 앱을, 포레시아(Faurecia)의 앱스토어는 250개 이상의 앱을 제공한다. 독립이 중요한 기능과 개방이 중요한 기능으로 나눠어 접근이 이뤄진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경우 구글과 클라우드 협력은 하되 OS는 자체 개발한다. 반면 앱스토어는 포레시아에 의존하는 등 기능에 맞춰 따로 또 같이 전략을 펼치고 있다.
차량용 앱마켓의 성공 전략은
국내에는 차량용 앱마켓 업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뛰어난 기술력의 기술 제공자들이 존재한다. 자체 브라우저·앱 프레임워크·개발 툴킷·앱 스토어까지 모두 보유한 기업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다양한 제조사들과 관련 시장에 대한 준비와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SDV를 통해 새로운 수익 창출과 고객 만족을 제공하고자 하는 주요 글로벌 제조사들은 자체적으로 역량을 강화하며 기술 내재화에 나서고 있다.
OTA 기반으로 구독형 옵션(FoD) 상품을 본격적으로 출시하는 것도 이 일환이다. 말 그대로 앱을 사듯이 자동차 기능을 사게하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자동차 제조사들은 새로운 수익 모델을 만들고자 한다. 내 차에 대한 자부심이 디자인이나 트림이 아닌 게임 아이템처럼 얼마나 많은 기능을 구독하고 있느냐에 갈릴 수 있다는 얘기다.
국내에서는 현대차그룹이 EV9을 통해 본격적인 FoD 서비스를 시작했다. ▲원격 스마트 주차 보조 2 ▲라이팅 패턴 ▲스트리밍 플러스과 같은 기능을 구독으로 이용할 수 있다. FoD 서비스는 SDV 체계에서 구현될 다양한 소프트웨어 기반 비즈니스 모델을 ‘상품’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기능 중심의 구독형 서비스만으로는 SDV가 지향하는 바를 충족할 수 없다. 모빌리티 디바이스와 스마트폰 생태계가 연결돼 다양한 응용 앱이 제작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어렵다는 것이다. 점차 차 안에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자 하는 제조사와 소비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앱 생태계가 구축돼야 한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현대차그룹의 SDx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사용자 편의를 높이기 위한 IVI 시스템 강화의 일환으로 차량용 앱마켓 구축에 나섰다. 이를 통해 외부 개발자들이 직접 참여해 킬러 앱을 개발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개발키트(SDK)를 공유한다. 자체 개발한 대형 언어 모델(LLM) 기반의 음성 어시스턴트와 인공지능(AI) 내비게이션을 적용해 사용자가 더욱 안전하고 편리하게 차량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사용자 경험(UX)도 구현할 계획이라고 한다. 결국 앞으로 현대차그룹과 같은 글로벌 OEM들이 직접 앱 생태계를 구축하고 역량있는 서드 파티(제 3의 협력자)들이 얼마나 이 마켓을 구성하는지가 초기 성공 전략이 될 것이다.
SDV 사업을 통해 미래 모빌리티 시장을 선점하려는 자동차 제조사들은 애플과 구글이 그랬던 것처럼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다만 이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제3의 협력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모빌리티 스타트업 및 플랫폼 기업과의 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강병희 차봇모빌리티 부대표(COO)는_현재 모빌리티 라이프 플랫폼 ‘차봇모빌리티’의 사업 운영을 총괄하고 있다. 고려대 경영전문대학원 석사(MBA)과정을 졸업했으며,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인 나인후르츠미디어의 광고 사업부 팀장을 거쳐 제일기획 커넥션 비즈니스팀 셀장으로서 삼성전자, KT, 쉐보레, 재규어랜드로버 등의 브랜드 디지털 마케팅 및 IMC 캠페인을 실행하며 스파익스 아시아, 웨비 어워드, 대한민국 광고 대상 등 국내외 유수 광고제에서 굵직한 수상 이력을 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