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 김진석 작가
반쯤 농담처럼 들리지만, 자율주행 기능이 가장 마지막으로 적용될 브랜드는 롤스로이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롤스로이스 오너들의 대부분은 직접 운전하지 않고 기사가 운전하기 때문에 자율주행차가 필요 없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기사가 있는 롤스로이스의 오너들은 자율주행이라는 새로운 기술이 가져다줄 수 있는 경험과 가치를 이미 누리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생각해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입니다.
자율주행뿐만 아니라, 우리가 상상하는 많은 혁신 기술들이 우리 삶에 가져다줄 가치들이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위에서 언급한 롤스로이스 오너들처럼, 현재에도 그러한 가치를 먼저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기술의 발전은 소수의 사람들이 누리는 가치를 더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하여 사람들을 더욱 자유롭게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모빌리티의 혁신도 기존의 다른 기술 발전처럼 자유의 확대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세탁기와 식기세척기 같은 가전제품의 발전이 우리에게 가사 노동 대신 더 많은 여유 시간을 주었던 것처럼, 이동의 효율성이 높아지는 것은 우리에게 더 많은 자유 시간을 허용해줄 것입니다. 또한, 100년 전에는 사람들의 이동 반경이 매우 작았고, 많은 사람들이 평생 다른 나라에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해외여행은 일종의 특권이었죠.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일상은 물론, 일상 외의 영역에서도 사람들의 이동 범위가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자율주행과 UAM으로 대표되는 모빌리티 혁신 시대에 어떤 삶을 살게 될지도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자율주행 시대를 얘기할 때 흔히 나오는 질문 중 하나는 ‘과연 자율주행 시대에도 사람들이 차를 소유할 것인가?’입니다. 자율주행이 소유의 시대를 끝내고 공유의 시대를 열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 질문은 오늘날 엄청난 소득과 자산이 주어진다면 차를 소유할 것인지, 아니면 무제한으로 택시를 이용할 것인지 묻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질문일 수 있습니다. 택시의 운영 비용이 저렴해지겠지만, 동시에 전용 기사를 고용하는 비용도 매우 저렴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도 대부분의 부자들이 무제한 택시 이용보다는 전용 기사를 고용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을 보면, 자율주행이 보편화된다고 해서 차를 소유하지 않는 것이 당연해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자율주행 시대가 되면 택시 요금이 지금보다 저렴해 지겠지만, 차량을 소유하는 것 대비 불편한 점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전히 픽업까지의 대기 시간이 있을 수 있으며, 외진 여행지에서는 이러한 대기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한, 공간과 프라이버시 문제도 있습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공간에 대한 배타적인 소유욕이 있습니다. 차를 소유하는 이유 중 하나가 나만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운전자도 많은 것을 보면, 미래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특정 공간을 자유롭게 사용하기 위해 차를 구매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대신 자율주행차에서는 주행보다는 공간이 더 중요해질 것이므로, 지금보다 더 높고 넓어지는 형태가 보편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프라이버시 역시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자율주행차가 여객 운송 차량으로 이용될 경우, 이동 데이터는 물론 서비스 제공이나 사고 방지를 위해 내부 영상과 소리를 수집할 가능성이 큽니다. 최근 스마트폰에서도 AI 관련 이슈 중 하나가 온디바이스와 클라우드 중 어디서 구동되는 것이 더 일반적이 될 것인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자율주행 시대에는 나만의 공간에서 프라이버시 이슈가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율주행차를 소유하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면, 자율주행 기술로 인해 생겨나는 자유를 더 광범위하고 편안하게 누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차를 소유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지금까지 자율주행에 대해 얘기한 것을 종합해보면 이러한 가치들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카니발 하이리무진 같은 차량에서 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이미 이러한 가치들을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자율주행차가 보편화된 시대에 사람들의 행태를 예상하기 위해서는 연예인들이 이동 중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효과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UAM(도심 항공 모빌리티)도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현재도 일부 연예인이나 부자들은 전용기나 헬리콥터를 이용해 시공간의 제약을 극복하며 빠르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배우 배용준이 강원도 홍천에서 진행된 박성웅의 결혼식에 헬리콥터를 타고 갔던 일화나, 가수 싸이가 미국 뉴욕에서 노홍철을 만나기 위해 헬리콥터를 이용했던 사례를 보면, UAM이 가져올 일상의 변화가 누군가에게는 이미 일상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UAM과 같은 기술의 확산은 그러한 경험을 누리는 사람들의 범위를 넓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비록 UAM이 도입 초기에는 상당히 비쌀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 이상의 시간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면 초창기에도 충분한 수요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도 비행기의 일등석은 이코노미보다 훨씬 비싸지만, 수요는 존재하듯이, UAM도 초기에는 비즈니스 수요나 고소득층 중심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큽니다. 예를 들어, 비즈니스나 일등석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공항으로 가는 시간을 단축하고 정시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충분한 수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UAM이 진정으로 우리의 삶을 바꾸는 순간은 비즈니스 수요를 넘어 더 많은 대중에게 확산되어 이동 범위를 확장시킬 때일 것입니다. UAM이 일상적인 이동에서 사용될 정도로 저렴해 질지는 모르겠지만, 비일상적인 이동에서는 충분히 활용될 정도의 가격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서울에서 강원도로 갈 때 차를 이용하기보다는 더 빠르고 교통 체증이 없는 UAM을 이용하는 경우가 더 많아질 것입니다. UAM 거점에 도착한 후에는 카셰어링 등을 이용해 이동할 수도 있겠죠.
KTX가 2004년 최초 도입된 이후 우리의 생활 반경을 확장한 것처럼, UAM은 더욱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UAM은 포트만 설치하면 되기 때문에 KTX 같은 철도 인프라에 비해 더 쉽게 확장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UAM의 대중화는 KTX보다 더 국토의 깊숙한 곳까지 접근성을 비약적으로 확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UAM은 KTX보다 우리의 주말을 더 크게 바꿀지도 모릅니다.
자율주행과 UAM 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래의 모빌리티 기술들은 지금까지 얘기했던 것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이동의 효율성을 높이고 이동 반경을 넓힐 수 있도록 만들 것입니다. 물론 자율주행차의 책임에 대한 철학적 논의, 유상운송의 허용 범위와 같은 기존의 산업들과의 조정, 보험같은 인접 산업에 미칠 영향 등 넘어야 할 산은 많겠지만 지금까지 기술이 그래왔던 것처럼 모빌리티의 발전 역시 인간의 삶에 더 많은 자유와 가능성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시대에 어떤 이동의 경험을 누리고 싶으신가요? 한번쯤 상상해보는 것도 즐거운 일일 것입니다.
[칼럼니스트 소개]
김진석 작가: 자동차 회사의 마케터로서 일했으며, 현재 모빌리티 산업의 사업 기획자로서 일하고 있다. 네이버 포스트 카레시피의 콘텐츠를 담당했으며, 다음자동차 등에서 컬럼을 연재했었다.